리어왕은 자신의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누어 주고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누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지에 따라 유산 상속을 달리할 것이라 예고하자,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그럴싸하게 아버지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말로 표현했다. 내심 기대를 걸었던 막내 코딜리아는 정작 말을 아꼈다. "저는 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막내딸로부터 의외의 밋밋한 대답을 들은 리어왕은 격분하여 코딜리아를 내쫓고 두 딸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주었다. 그러나 고너릴과 리건은 상속 받자마자 변심하여 아버지를 황야로 내몰았다. 리어왕은 자녀들의 배신에 분노하며 폭풍 속에서 미쳐갔다.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가족에 대한 가장 오래된 환상의 붕괴를 전한다. '내가 모든 것을 주었으니 가족은 마땅히 나를 보살펴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를 리어왕은 광야에서 폭풍을 맞으며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에게 가장 친밀하면서도 익숙한 기초 사회제도인 가족, 가족도 항상 그 모습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하듯, 가족 역시 변화한다. 다만 우리의 가족에 대한 관념이 가족의 변화 속도에 맞추어 변하지 않을 뿐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가족의 변화를 냉정하게 진단한다. 그는 《위험사회》(1986)에서 후기 근대 사회의 특징을 "좀비화된 제도"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다. 그에 따르면 죽었는데 살아있는 척하는 대표적인 좀비화된 제도가 다름 아닌 '가족'이다. 가족은 형식적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법적으로도 이전 세대의 재산이 이후 세대에게 합법적으로 전해지는 경로로 작동하지만, 그 내밀한 기능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온전히 돌보며, 어려울 때 무조건 기댈 수 있는 관계라는 가족의 이미지는 점점 낡은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가족은 이미 변했다.







"가족도 구조조정을 하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 가족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 야마다 마사히로,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2024년 기준 한국의 1인 가구는 804만 5천 가구로 전체 가구의 36.1%에 달한다. 2052년에는 전체 가구의 41.3%가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마다 마사히로가 강조했듯이 1인 가구의 증가는 가족의 종말이 아니라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 맹신해 온 '우리가 알던 형태의 가족'이 해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비혼을 선택한 젊은 세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배우자가 있으면서 따로 사는 경우, 이혼으로 혼자가 된 경우, 사별로 남겨진 경우가 모두 이 통계에 포함된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80.8년, 여자 86.6년으로 남녀 간 격차가 5.8년에 달한다(2024년 기준). 지금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부부라도 통계적으로 여성은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평균 6년 가까이를 혼자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여성 1인 가구 중 60세 이상이 47.7%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이를 명확히 뒷받침한다. 결혼을 온전히 유지했더라도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1인 가구가 되는 것은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보편적 현실이다.


그렇다면 1인 가구의 증가는 사회적 비극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전체 가구의 47%,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무려 60%가 1인 가구인 스웨덴의 사례를 보자. 전통적인 상식대로라면 가족이 해체되어 구성원 각자가 고립된 채 쇠락하는 우울한 사회여야 한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다고 해서 반드시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사회적 관계망이 혈연 가족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혼자 사느냐 같이 사느냐'가 아니라, '혼자 살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과 관계망이 갖추어져 있느냐'다.


리어왕은 광야에서 거친 폭풍을 온몸으로 맞고 나서야 비로소 눈을 떴다.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이 무너진 바로 그 폐허에서 그는 처음으로 '진짜 관계'를 발견했다. 두 딸의 달콤한 거짓말이 아니라, 미쳐가는 자신을 곁에서 묵묵히 지킨 광대와 켄트 백작이 진짜 관계였다. 혈연이 아니라 선택된 관계, 계산된 이해관계가 아니라 조건 없는 진심에서 비롯된 관계였다.





"단독인의 사회는… 자기만의 방이… 고립된 섬으로 흩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자만의 방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이어진 사회를 의미한다.

그 네트워크를 다른 말로는 연대라 한다"


-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혼자 설 수 있는 힘, 즉 '고독의 능력'을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결핍이나 의존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으로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제도의 신화가 무너진 자리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열리는 공간이다.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함께 살고 돌봐야 한다는 선입견을 걷어낸다면, 우리가 가족에게 기대했던 그 따뜻한 기능을 '선택된 관계'로 채울 수 있다.


인생의 후반부는 가족이라는 좀비화된 제도에 대한 환상을 덜어내는 시간이다. 리어왕처럼 모든 것을 주었으니 돌려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는 것,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끈끈한 관계가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는 맹신을 거두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에 공동의 취향과 가치를 나누는 새로운 공동체를 채워 넣는 것. 폭풍 속에서 리어왕을 지켜낸 것은 핏줄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인생의 후반부에 우리 곁을 지킬 최후의 보루 역시, 어쩌면 주어지는 혈연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진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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